Essay
가져가는 것《서도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곳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어떤 곳을 떠나기 전이면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다. 짐을 모두 차에 싣고 집이 텅 비고 나면 문 뒤도, 장롱 안도 찍는다. 빈집에서는 셔터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다. 한 번, 또 한 번. 사진으로 찍어 두면 가져가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사진에 남는 것은 구석의 모양이다. 그곳 자체는 따라오지 않는다. 가구도 옷도 책도 차에 실을 수 있다. 집은 실을 수 없다. 사람과 집 사이는 사람과 물건 사이와 다르다. 살 때는 떠나고 싶고, 떠나면 집이 따라온다. 꽤 오래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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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원을 마친 뒤에야 미국으로 갔다. 그 뒤로 줄곧 외국에 살았다. 처음은 뉴욕, 지금은 런던, 그 사이에 베를린과 다른 도시들이 있다. 많은 사람이 본 사진이 있다. 초록, 보라, 노랑의 반투명한 천으로 만든 문틀이 한 겹씩 안쪽으로 포개져 있고, 맨 안쪽에 사람 그림자가 하나 비친다. 처음 봤을 때 나는 집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향수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의 오디오 가이드는 다르게 말한다. 그의 '움직이는 집'이 서구에 간 뒤에 시작됐다는 것은 반쪽의 진실이라고. 나머지 반쪽은 서울 성북동에 있다.
그가 자란 한옥은 아버지가 지었다. 아버지 서세옥은 수묵화가였다. 옛 한옥이 한 채씩 헐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헐린 집의 목재를 모아 두었다. 그리고 창덕궁의 한 전각을 본떠, 대목장에게 전통 방식으로 이 집을 짓게 했다. 남들이 헐 때 그는 지었다. 아들도 뒤에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 들어갔다. 먹과 선과 여백을 배웠다. 그런데 그가 만들어 낸 것은 아버지의 그림과 아주 달랐다. 수묵이 아니라 천과 종이와 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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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그는 돌아와 아버지가 지은 이 집을 떠냈다. 한지를 집의 안팎에 바짝 붙인다. 흑연 연필로 한 치 한 치 문지른다. 어릴 때 동전 위에 종이를 대고 문지르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했다고 한다. 한지는 거의 1년 동안 집에 붙어 있었다. 비바람을 맞았다. 나무의 색이 배어들었다. 떼어 낼 때는 소리가 아주 컸다. 건물이 제 살갗을 벗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의 이름은 〈러빙/러빙: 서울 집〉이다. rubbing은 문지르는 일이다. 발음은 loving과 비슷하다. 문지르는 행위 자체가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이 작품은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그는 말한다. 전시장에 서 있는 흰 기와집, 기와도 서까래도 창살도 모두 잿빛이 도는 흰색인 그 집이 이 종이들이다. 실제 집과 같은 크기다. 안에는 나무가 한 조각도 없다.

같은 방법을 뉴욕의 집에도 썼다. 그 아파트에 18년을 살았다. 미국에 간 뒤 가장 오래 산 집이었다. 작업실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집주인 덕분이었다.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직 젊은 그에게 집주인은 기꺼이 집을 빌려주었다. 그 뒤로도 그의 작업을 줄곧 응원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집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건물이 팔렸을 때, 그가 잃은 것은 살 곳만이 아니었다. 보통은 여기서 이사로 끝난다. 그는 이 집을 작품으로 남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벽, 바닥, 천장, 문, 창틀, 스위치, 손잡이. 집 안의 모든 표면을 종이로 덮었다. 색연필로 몇 달 동안 손으로 문질렀다. 자기 에너지가 그 공간에 쌓여 있었다고, 문지르는 일은 그 쌓인 시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의 이름은 그 아파트의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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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지은 집은 이 두 종이 집보다 앞선다. 서도호가 미국에 공부하러 간 그해였다. 기숙사 방 하나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먼저 자로 그 방을 한 치 한 치 쟀다. 얇은 무명천으로 원래 크기 그대로 꿰맸다. 지퍼를 달았다. 재단사가 맞춤옷을 짓듯이 만들었다. 작품의 이름은 방 번호 그대로 〈516호〉다. 접을 수도 있고 펼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읽고서야 나는 천으로 지은 집들이 왜 옷처럼 보이는지 알았다. 오디오 가이드에 그의 말이 한 줄 있다. 옷은 사람이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가장 작고 친밀한 거주 공간이고, 건축은 그것이 확장된 것이다. 그래서 집은 꿰맬 수 있다. 접을 수 있다. 가지고 갈 수 있다.
그 기숙사 방에서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살았던 집을 하나하나 천으로 다시 지었다. 22미터짜리 알록달록한 통로 〈둥지/들〉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에서 살았던 집에서 가져왔다. 방이나 거실이 아니다. 복도, 계단, 문턱처럼 지나다니는 자리들이다. 그것들을 한 토막씩 이어 색이 다른 천으로 길 하나를 꿰맸다. 천은 오늘날 여름 한복을 지을 때 흔히 쓰는 반투명 폴리에스터다. 안을 걷다 보면 저 끝으로 미술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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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드나들면서 매일 손이 닿는 물건은 사실 많지 않다. 문손잡이, 자물쇠,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 콘센트. 작가는 무심코 되풀이해 만지는 이런 물건에 삶의 시간이 묻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아 본 집마다 남긴 것이 바로 이것들이다. 반투명한 천으로 된 긴 벽이 하나 더 있다. 런던으로 옮긴 뒤 지금까지 사는 집의 윤곽이다. 나는 벽에 흩어진 작은 색점들이 무늬인 줄 알았다. 설명을 읽고서야 알았다. 여섯 도시의 집에 있던 바로 이 물건들이었다.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천으로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도시마다 다른 색을 입혔다. 하나하나 원래 집에 있던 자리와 높이 그대로 붙였다. 집마다 스위치 높이가 다르다. 오래 보고 있으면 조금 어지럽다. 그는 이 혼란을 자주 시차에 빗댄다. 작품의 이름은 〈완벽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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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약 200점의 드로잉도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다. 종이 반죽 속에 실을 묻어 만들었다. 그래서 드로잉에 두께가 있다. 그중 한 점이 〈쫓아오는 집〉이다. 왼쪽 아래에서 작은 사람이 앞으로 달려간다. 그 뒤를 한옥 한 채가 쫓아온다. 수많은 색색의 실에 끌려, 나부끼는 천처럼. 사람이 앞으로 달릴 때 집은 줄곧 뒤에 있다. 그리고 따라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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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은 집이 아니다. 코트 한 벌이다. 옷걸이에 걸린 갈색 모직 코트가 앞섶을 열고 있다. 안감에는 남색, 분홍, 연두, 흰색, 격자무늬 주머니가 빼곡하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코트는 그의 것이다. 주머니는 가족의 옷에서 떼어 내 꿰매 붙였다. 안에는 가족과 관련된 물건이 들어 있다. 작품의 이름은 〈사랑의 기억〉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두 딸과 함께 만든 〈타임 포켓〉도 이 전시에 있다. 주머니는 안감에 달려 있다. 코트를 입으면 몸에 닿는 쪽이다.

인간, 공간, 시간. 한자로 쓰면 모두 '간(間)'이 들어간다. 가족 사이에도 그 '간'이 있다. 그가 30년 동안 해 온 일, 집을 떠내고, 집을 꿰매고, 가족의 주머니를 자기 코트에 꿰매 단 일은 모두 그 사이를 오가는 일이었다. 사람과 집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이 몇 해 동안 나는 이사를 여러 번 했다. 도시도 몇 번 바꿨다. 어떤 도시에는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이사하던 마지막 날마다 찍은 사진은 모두 가지고 있다. 사진 속 방은 비어 있다. 사람은 없다.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서도호는 그만의 방식으로 늘 곁에 두고 다녔다.
직접 가서 보았으면 좋겠다. 《서도호》.
— Yu
지식 카드: 설치 미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