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원고《소녀 만화·인피니티》, 국립신미술관


그림이 거의 완성될 즈음, 어딘가 한 곳이 맞지 않았다. 나는 오래 바라보았고, 손을 대지 못했다.
고치려면 이미 그린 것 위에 한 겹을 더 얹어야 한다. 잘못 얹으면 덧댄 자리가 옆과 리듬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림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고치지 않으면 볼 때마다 눈이 그곳으로 간다. 이런 자리에서는 손을 대기까지 오래 괴로워할 때가 많다. 한 부분을 통째로 다시 그리기도 하고 살짝 손보기만 하기도 한다. 손본 뒤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림이 걸리고 나면 사람들이 보는 것은 마지막 모습이다. 고친 자리는 나만 기억한다.
만화가가 인쇄소에 넘기는 종이에도 그런 자리가 있다. 잘못 그린 칸은 흰 물감으로 덮고 다시 그린다. 따로 그린 칸을 그 위에 붙이기도 한다. 인쇄된 면에서는 어느 쪽도 보이지 않는다.
롯폰기의 국립신미술관이 이번에 내놓는 것이 바로 만화의 원고다.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야마기시 료코(山岸凉子), 야마토 와키(大和和紀). 세 만화가의 흑백 원고와 컬러 원화를 합치면 800점이 넘는다. 일본의 국립미술관이 이만한 규모로 소녀 만화 전시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화의 원고는 본래 독자에게 보이려고 그린 것이 아니다. 인쇄소에 넘기는 원판이다. 그래서 종이가 잡지의 지면보다 크다. 대사는 먼저 연필로 말풍선 안에 적어 둔다. 그 위에 편집자가 따로 인쇄한 글자를 오려 한 대목씩 붙인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인쇄소에 전하는 파란 글씨가 있다. 지우개로 지운 자국도, 덧댄 테이프도 있다. 이런 것들은 인쇄하는 과정에서 모두 지워진다. 그래서 잡지에서 보는 지면은 깨끗하다. 원고에는 그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컬러 원화는 색이 다르다. 잡지의 표지와 연재 매 회 첫머리의 속표지는 물감으로 그린다. 거기에는 인쇄로는 다 옮기지 못하는 색이 있다.
인쇄용 원판이었기 때문에, 만화의 원고는 오랫동안 남겨 둘 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인쇄가 끝난 뒤 작가에게 돌아오지 않은 원고도, 버려진 원고도 적지 않다. 야마토 와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원화는 인쇄된 것과 전혀 다르다고. 힘이 있고, 이미 미술품이라고 해도 좋다고. 물감이 도드라진 자리와 종이의 결에서 사람이 그렸다는 것이 보인다고. 다만 본래 인쇄하려고 그린 것이라 보통의 그림보다 약하다고도 했다. 종이는 서서히 산화하고 색도 바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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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모두 1960년대 후반에 데뷔했다. 스무 살 안팎이었다. 소녀 만화 잡지는 여학생이 읽는 잡지였다. 그리는 사람은 그 몇 해 사이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차츰 바뀌었다. 무엇을 실을지 정하는 편집자는 여전히 거의 다 남성이었다. 같은 세대의 한 만화가가 그 시절을 돌아본 적이 있다. 편집자들은 여자아이라면 으레 어떤 소재, 어떤 그림을 좋아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맡기는 일도 다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 정해져 있던 소재는 가엾은 처지의 미소녀, 아니면 학교에서의 연애였다. 세 사람이 뒤에 그린 것은 모두 그 바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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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는 천 년 전에 쓰인 장편 소설이다. 그 시절 일본 궁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의 학생은 누구나 고전 수업에서 그 한 대목을 읽는다. 야마토 와키는 중학교 1학년 때 학생용 축약본을 읽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다 있나 싶었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 완역본을 끝까지 읽었다. 누군가 이것을 만화로 그려 주었으면 했다. 만화가 친구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대개 “싫다”거나 “안 읽어 봤다”였다. 결국 자기가 편집부에 전화를 걸었다. 《겐지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연재를 준비한 것은 1970년대였다. 보통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아주 적던 때다. 천 년 전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살았는지, 보고 그릴 것이 없었다. 야마토 와키는 교토의 한 복식 자료관에 가서 실물을 보았다. 마쓰리도 보러 갔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걸을 때 소매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주름이 어디에 잡히는지를 보았다. 도쿄로 돌아와서는 어시스턴트 다섯 명과 일을 나누었다. 집의 구조와 뜰에 심는 꽃을 저마다 조사했다. 알아낸 것은 서로 알려 주었다. 연재를 위해 그린 속표지 한 장이 있다. 머리가 긴 여인이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옷이 한 겹 위에 또 한 겹 포개져 있다. 겹마다 무늬가 다르다.

첫머리도 바꾸었다. 원작의 첫 문장은 ‘어느 천황의 치세였는지’쯤 되는 뜻이다. 천 년 전의 옛말로 쓰인 문장이다. 일본의 학생은 수업 시간에 이 문장을 외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옛 시조나 가사의 첫 구절을 외우던 것과 같다. 야마토 와키는 십대 독자가 이 문장을 보자마자 읽기를 그만둘까 걱정했다. 그래서 만화의 첫 쪽은 여기서 시작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잃은 소년에서 시작한다. 연재는 14년 동안 이어졌다. 준비한 시간까지 치면 15년쯤이다. 《겐지 이야기》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렸다.
야마토 와키의 이 만화판 《겐지 이야기》(AK커뮤니케이션즈, 2008)는 지금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고전을 읽기 전에 보는 참고서로 쓰인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19년 《겐지 이야기》 전시를 열면서 이 만화의 원화도 걸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만화의 원화를 전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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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오 모토의 《포의 일족》(세미콜론, 2013). 주인공 에드가는 흡혈귀다. 영원히 열네 살에 멈춰 있다. 또 한 소년과 함께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살아간다. 소녀 만화가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읽는 여자아이들을 설레게 하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기오 모토가 직접 말한 이유는 달랐다. 소년이 주인공이면 그리기가 편하다고 했다. 주인공이 여자아이면 무엇을 하든 “여자애가 어떻게 그런 걸” “여자라면 이래야지” 하는 말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에야, 자신도 여자라는 이유로 줄곧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 하기오 모토는 아직 잡지의 주력이 아니었다. 몇 쪽이라도 그릴 수 있으면 기뻤다. 언제 다른 사람으로 바뀔지도 몰랐다. 이 작품은 처음에 단편의 꼴로 조용히 실렸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그려 나갔다. 뒤에 출판사가 처음으로 소녀 만화 연재를 단행본으로 묶기로 했다. 고른 것이 이 작품이었다. 편집자는 3만 부를 찍는다고 했다. 1년쯤이면 다 팔릴 것이라고 했다. 만약 다 팔리지 않으면 원고료는 현금이 아니라 남은 책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 많은 책을 받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편집자는 농담 삼아, 이케부쿠로역 지하도에 들고 나가 팔라고 했다. 책은 나온 지 사흘 만에 3만 부가 다 팔렸다.
보통의 연재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한 회씩 이어져 나간다. 《포의 일족》은 한 편 한 편이 따로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다. 편마다 시대가 다르다. 두 소년을 바라보는 사람도 다르다. 모아 놓아야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된다. 이런 방식은 그때 소녀 만화에 거의 없었다. 읽는 사람도 여학생만이 아니게 되었다. 남성 독자가 늘었다. 1976년, 잡지가 독자에게 부록으로 준 밸런타인 카드에는 이 작품의 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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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 료코의 《해 뜨는 곳의 천자》는 쇼토쿠 태자의 젊은 날을 그린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 고대의 정치가다. 연재가 시작된 1980년, 당시 일본의 1만 엔권 지폐에 그의 초상이 찍혀 있었다. 야마기시 료코가 그린 태자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힘을 지닌 소년이다. 어머니는 그를 두려워하고 피한다. 그가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다른 귀족 집안의 소년이다. 연재 첫해의 속표지 한 장이 있다. 태자가 커다란 달 앞에 서 있다. 고개를 숙이고, 칼집에 든 칼 한 자루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편집부는 처음에 크게 반대했다. 지폐에 실린 인물을 소녀 잡지에 연재하는 것부터 난처한 일이었다. 하물며 이런 이야기였다. 야마기시 료코는 뒤에 그때를, ‘동성애’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돌아보았다. 연재를 시작하기 9년 전, 두 여학생이 서로 사랑하는 단편을 그린 적이 있다. 여러 해 뒤에 그 단편에 대해 말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사실 두 남자아이였다고.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그때는 생각했다고. 허락될 리도 없다고 여겨, 하는 수 없이 여자아이로 바꾸었다고. 《해 뜨는 곳의 천자》에서는 처음 생각한 대로 그렸다.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귀함은 거리낌 없이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일로 편집부와 심하게 다투었다. 연재는 4년 동안 이어졌다.
가장 열정이 있던 때에 끝까지 그려서 다행이라고 야마기시 료코는 말한다. 2026년 10월, 기쿠치 간 상을 받았다. 일본에서 문화의 여러 분야에 주는 상이다. 수상 이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보수적인 만화계에 혁명을 일으켰고, 소녀 만화를 예술 문화의 높이로 끌어올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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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하기오 모토는 일흔일곱, 야마토 와키는 일흔여덟, 야마기시 료코는 일흔아홉이다. 세 사람 모두 데뷔한 지 60년이 다 되어 간다.
《포의 일족》은 1976년에 멈추었다. 40년 뒤, 하기오 모토는 다시 에드가를 그렸다. 처음에는 16쪽짜리 단편 하나만 그리기로 했다. 그리기 시작하자 두 소년이 저희끼리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고는 점점 길어졌다. 그러다 연재가 되었다. 가장 힘든 것은 40년 전과 같은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야마기시 료코는 상을 받은 그 가을에 새 단편을 발표했다.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지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늙어 가는 일을 그려 볼까 한다고.

원고는 그린 사람에게 아주 사적인 물건이다. 덮은 흰색도, 위에 붙인 칸도 인쇄된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는 그린 사람만 안다. 세 만화가는 그것들을 벽에 걸어 모르는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게 한다. 나는 그 일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나도 완성한 그림에서 고친 자리를 남에게 거의 말하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 그중 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는 왜 덮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직접 가서 보았으면 좋겠다. 《소녀 만화·인피니티》.
— Yu

지식 카드: 소녀 만화(순정만화) ·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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