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thly

서울 선집・12월밤이 가장 긴 달, 서울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에디터가 고르고 각 기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습니다. 유료 게재는 받지 않습니다. 이 선집에 대하여

12월의 서울은 한겨울이다. 길모퉁이에는 붕어빵 노점이 다시 나오고, 퇴근길에는 송년회 약속이 하나둘 겹친다.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서울시는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가늘게 틀어 두라고 안내한다. 양은 2분에 종이컵 하나가 찰 정도다. 22일 동지에는 식탁에 팥죽 한 그릇이 오른다.

이제부터 12월의 서울 선집이다. 겨울 거리에서 붕어빵의 김이 가시기 전까지, 이 선집이 함께 걷기를.

— Yu

1 / 4 이미지: 리움미술관

구정아는 리움미술관 창밖 돌망태 옹벽 틈에 수정 50개를 한 알씩 숨겼다.

수정은 평소에는 돌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관객이 선 자리와 해의 각도, 날씨가 맞아떨어질 때에야 한 번 반짝인다.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2003/2026)은 2010년 디아 비컨의 풀밭에서 시작했다. 발견할 수도, 끝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작품의 일부다.

《구정아: 우스모스》에는 정해진 중심도, 하나의 관람 동선도 없다. 1990년대 초 작업부터 이번에 새로 만든 대형 작업까지 35점이 로비와 M2, 고미술 상설전시실, 바깥에 흩어져 있다. 드로잉 1,001장과 나무 상자 77개로 된 〈R〉(2005)은 처음으로 전체 규모로 나왔지만, 한 번에 다 볼 수는 없다. 일부만 벽에 걸리고 나머지는 상자에 남으며, 벽의 드로잉은 전시 기간 중 바뀐다.

제목의 '우스'는 1990년대 중반 작가가 지은 말이다. 리움은 그것이 소리이자 접두사이고 접미사이며, 에너지나 물질, 우주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끝내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성원 부관장은 놓치는 것도 보는 것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벽의 작은 홈 안에는 〈무제〉(1998)가 있다. 샤프 연필심 57개가 접착제 없이 서 있어서, 손끝이 닿으면 쓰러진다.

1 / 6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999년부터 서도호는 서울과 뉴욕 사이 태평양에 다리를 놓는 일을 진지하게 궁리해 왔다.

서도호의 〈다리 프로젝트〉는 실제의 거리를 없애 보자는 상상에서 시작했다. 생각은 자기가 살았던 도시들을 다리 하나로 잇고, 그 한가운데에 집을 짓는 데까지 갔다. 작가는 건축가와 구조 공학자, 기상학자와 함께 두 도시 사이 바다의 수심과 파고, 풍속을 조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그 모형과 드로잉, 영상이 나왔다. 미술관의 오디오 가이드는 이것이 최종 결과가 아니며, 이 프로젝트는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시는 전시장 밖 복도의 〈시드 뱅크〉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 한옥 마당의 나무로 깎은 바다 동물과 대학 시절의 작업이 있다. 〈무제(풍선)〉에서 학생 서도호는 폐공장에서 자기 숨을 담은 풍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실로 그린 드로잉 〈쫓아오는 집〉(2019)에서는 작은 사람 하나가 앞으로 달려가고, 그 뒤로 한옥 한 채가 수많은 색실에 끌려 천처럼 나부끼며 따라온다.

1 / 5 이미지: 푸투라서울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무대는 모두 영국 작가 에스 데블린의 손에서 나왔다.

에스 데블린은 1971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오페라와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U2, 비욘세, 아델의 공연 무대를 디자인했다. 2016년부터는 그 공간의 언어를 미술관과 공공 공간으로 넓혀 왔다. 그에게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겪으며 생겨나는 '일시적 사회'다.

북촌로의 푸투라서울에는 '백 개의 시'라는 연작이 있다. 앞의 두 편은 전시장을 어둠 속에 잠기게 했지만, 세 번째 시는 처음으로 자연광을 들여, 건물의 곡면 벽과 하루의 시간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데블린은 이를 '빛의 언어로 쓴 시'라 부른다.

그 가운데 〈스크린쉐어〉의 영화 스크린은 수백 권의 스케치북으로 되어 있다. 35년 동안의 스케치로, 런던의 생물과 아이들을 그린 것도 있고, 대부분은 아이디어를 짜거나 협업자와 나누려고 그린 밑그림이다. 영상이 끝나면 관객은 스크린에서 한 장을 가져갈 수 있다.

전시 제목 '다시 집으로'는 92세의 기후운동가 조애나 메이시의 말에서 왔다. 고립감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공간은 정원을 향해 열리고, 정원이 물 위에 비친다.

1 / 4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는 1935년, 자기 그림 〈취리히 호수의 일요일〉을 취리히 미술관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모던 아트의 탄생》의 보도자료에 실린 작품 설명에는 누가, 언제 기증했는지가 적힌 것이 여럿이다. 키르히너의 그림은 화가 자신이 주었다. 파울 클레의 〈사냥꾼 나무〉(1939)는 클레가 세상을 떠난 뒤 1948년에 유족이, 소피 토이버-아르프의 1918년 삼면화는 1958년에 한스 아르프가가 기증했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의 소장품이 한국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화와 조각 85점이 176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약 200년을 잇는다. 근대 미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그림부터 인상파와 초현실주의까지다. 박물관은 스위스의 '국민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와, 제1차 세계대전 중 취리히에서 시작된 '취리히 다다'를 따로 꼽으며,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토이버-아르프의 〈삼면화, 대응하는 삼각형이 어우러진 수직-수평 구도〉는 그 취리히 다다가 한창이던 1918년에 그려졌다. 세로로 긴 판 세 장에 유채와 금속색 물감을 썼다.

클레의 〈사냥꾼 나무〉에서는 주황색 바탕 위에, 회녹색 조각을 이어 붙인 듯한 큰 나무가 서 있다. 한쪽 구석에 아주 작은 빨간 사람이 있다.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925년, 이종우는 우연한 계기로 파리에 건너가 그곳에 간 첫 한국인 화가가 되었다.

이종우는 파리에 3년쯤 머물며 러시아에서 망명한 화가에게 고전적인 사실 묘사를 배웠다. 1927년에는 두 점이 살롱 도톤에 입선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형이 있는 정물〉이다. 1928년 경성으로 돌아온 뒤에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파리 시절 작품 53점을 건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파리로 가는 사람은 더 늘었다. 당시 파리는 현대미술의 수도로 여겨졌고, 뉴욕과 세계 미술의 중심을 다투고 있었다. 이성자는 전쟁 중이던 1951년 파리로 건너갔고, 훗날 남프랑스에 마련한 작업실은 2024년 프랑스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응노는 1958년 파리에 가서 훗날 그곳에 동양 서화를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이번에 전관을 써서 1950~70년대 프랑스로 건너간 한국 작가 50여 명을 소개한다. 전시 제목은 '파리의 이방인'. 미술관 건물은 덕수궁 안에 1938년 미술관으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2026년은 한불 수교 140주년이다.

백 년 가까이 전, 살롱 도톤의 벽에 인형이 있는 정물 한 점이 걸렸다. 그린 사람은 조선에서 온 화가였다.

1 / 4 이미지: 세화미술관

1969년부터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그림 속 나무와 사람을 거꾸로 그렸다.

바젤리츠는 1938년 독일 작센의 도이치바젤리츠라는 마을에서 한스게오르크 케른으로 태어났다. 동베를린에서 그림을 배우다 서베를린으로 건너갔고, 스무 살 남짓에 고향 마을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

1969년, 그는 거꾸로 선 숲을 그렸다. 그 뒤로 그의 캔버스에서는 사람도 새도 나무도 머리를 아래로 두었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그림 자체를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2026년에 세상을 떠났다. 광화문 근처 세화미술관의 이번 회고전은 작가 타계 후 국내에서 열리는 첫 전시로, 회화와 조각, 드로잉 46점으로 60여 년의 궤적을 따라간다. 1960~80년대 초기작에서 시작해, 평생의 동반자 엘케의 초상, 2000년대 이후 옛 모티프를 스스로 다시 그린 '리믹스' 연작으로 이어진다. 조각난 몸과 독수리도 거듭 나온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말년에 몰두한 '골드 페인팅' 연작이 걸린다.

이 전시의 마지막 장은 오윤이 열다섯 살에 쓴 여행 일기에서 시작한다.

오윤은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학생이던 1969년 '현실동인'을 만들었고, 1970년대에는 목판을 바탕으로 한 자기만의 조형 언어를 세워 책 표지와 삽화도 그렸다. 1979년에는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했다.

1986년 그림마당 민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해 마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가 사후 40주년이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소장한 오윤 컬렉션으로 꾸민 이 전시는 시간 순서에 따라 여섯 장으로 이어지고, 장 제목은 모두 그의 노트와 메모에서 가져왔다.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 도구가 이번에 새로 정리되어 나온다.

판화 원판 옆에는 그가 쓰던 도구도 함께 놓인다.

1 / 2 이미지: 피크닉

데보라 터브빌이 자기 사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쓴 말은 '분위기(atmosphere)'였다.

남산 자락 회현동의 1970년대 제약회사 건물을 고쳐 만든 피크닉은 '분위기'라는 그 말을 그대로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 터브빌은 1932년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디자이너 클레어 매카델의 작업실에서 피팅 모델이자 조수로 일했고, 이후 《하퍼스 바자》의 패션 에디터가 되었다. 카메라는 늦게 들었다. 1970년대에는 《보그》를 무대로 헬무트 뉴튼, 기 부르댕과 함께 패션 사진의 새 흐름을 이끌었다.

웃는 얼굴이나 유혹하는 포즈는 찍지 않았다. 찍은 것은 사람의 속마음과, 그 곁에 감도는 미묘한 공기였다. 1975년 《보그》에 실린 사진, 곧 철거될 뉴욕의 공중목욕탕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다섯 명을 찍은 사진은 큰 논란을 불렀다. 같은 해 그중 한 장이 한 사진전에 걸렸을 때, 《뉴욕타임스》는 전시에서 구도가 가장 아름다운 사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1981년에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의뢰로 베르사유궁의 비공개 공간을 찍어 《Unseen Versailles》를 냈다. 말년에는 뉴욕과 멕시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살다 2013년 세상을 떠났다. 피크닉은 터브빌의 사진 속 장소와 시간이 이미 지나간 듯하면서도 겪어 보지 않은 과거 같고, 오래된 영화의 빛바랜 기억 같은 색과 질감을 지녔다고 소개한다.

포스터의 흑백 사진 속, 한 여자가 눈을 감고 있고, 헝클어진 머리칼이 얼굴의 반을 덮었다.

1 / 6 이미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979년, 린 허쉬만 리슨은 관객이 리모컨으로 화면 속 여자의 삶을 고르게 했다.

〈로나〉(1979–1984)의 주인공 로나는 광장 공포증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전화와 텔레비전으로만 세상과 닿는다. 〈로나〉는 레이저디스크로 관객과 주고받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관객의 선택에 따라 36개의 장면을 지나 'LA 이주', 'TV 사격', '자살' 가운데 한 결말에 이른다. 장면을 짠 스토리보드와 흐름도도 함께 나왔다.

1984년의 〈딥 컨택트〉는 터치스크린이다. 화면 속 마리온이 관객에게 화면을 만져 보라고 꾀고, 몸의 어디를 만지느냐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갈린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만든 〈에이전트 루비〉는 웹에서 대화하는 AI 챗봇으로, 대화에 따라 얼굴을 찌푸리거나 입을 삐죽인다. 미술관은 오늘의 AI에 비하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AI의 유년기'를 마주하게 한다고 썼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의 이번 개인전에서 〈로나〉와 〈딥 컨택트〉에는 한국어 자막이 붙었다. 작가의 인터랙티브 작품이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딥 컨택트〉의 자막에는 작가의 기술진과 미술관이 1980년대 초 컴퓨터 화면에 어울리는 한글 서체를 골라 넣었다.

〈로나〉의 방은 초록 벽에 탁자와 의자, 스탠드가 놓였고, 창가에 텔레비전 한 대가 있다.

1 / 5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Marie Antoinette in court dress, François-Hubert Drouais, 1773.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국립중앙박물관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옷과 공간, 취향으로 스스로를 연출했다고 본다.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은 18세기 프랑스 왕비의 삶과 미적 취향이 패션과 예술, 문화 전반에 남긴 영향을 따라가는 전시로,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과 함께 연다. 포스터에는 V&A가 만들고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다시 꾸민 전시라고 적혀 있다. 왕비의 유품과, 그 영향을 받은 후대의 패션과 장식 미술, 공예, 설치 작품 등 190여 건이 나온다.

박물관은 사치와 향락의 상징, 동경의 대상, 혁명의 희생자, 패션 아이콘처럼 엇갈리게 소비되어 온 왕비의 여러 이미지를 함께 보여 주고, 그 이미지들이 예술과 패션, 대중문화에서 되풀이되고 변주되며 오늘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살핀다고 설명한다. 이 전시는 2025년 9월 런던 V&A 사우스켄싱턴에서 처음 열렸다. 12월 18일에 문을 연다.

1 / 3 이미지: 박서보미술관

박서보미술관은 연희동 골목 안, 박서보가 작업하던 작업실 바로 옆에 있다.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박서보미술관의 개관전이다. 미술관은 박서보의 예술과 그가 남긴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고, 박서보가 생전에 박서보재단에 기증한 약 3천 점의 작품이 그 토대가 되었다.

박서보(1931~2023)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작업해 온 흐엉 도딘(Huong Dodinh, 1945년생)의 2인전으로, 박서보 회화 25점과 흐엉 도딘 회화 17점, 모두 42점이 나온다. 박서보는 한지를 붙인 화면에 선을 반복해서 긋고, 흐엉 도딘은 광물 안료를 수십 겹 쌓는다. 미술관은 두 작가가 '절제', '반복', '수행'이라는 같은 미학을 나눈다고 본다.

전시는 지하 2층의 두 작가의 199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3층의 두 작가의 흰색 계열 작품으로 끝난다.

3층에는 높이 8미터의 정사각형 공간 '큐브'가 있다. 반투명 유리로 둘러싸여 바깥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미지: 서울미술관

1996년 임직순이 세상을 떠난 뒤, 작업실에는 끝내지 못한 그림 한 점이 남아 있었다.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는 임직순(1921~1996)의 30주기 회고전이다. 제목은 화가가 남긴 말에서 가져왔다. 유화 약 80점에 드로잉, 수채화, 판화까지 작품 100여 점과 유품 30여 점이 나온다.

임직순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1961년 조선대학교에 부임해 광주에 자리를 잡았다. 소녀와 꽃을 그렸고, 산과 바다, 무등산과 남도의 풍경도 그려서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전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를 시간 순서로 따라간다.

작업실에서 발견된 미완성 그림은 세상을 떠나기 전해 미국에서 본 풍경을 담았다. 신장병 투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지만, 이 그림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30주기를 맞아 처음 공개되며, 그가 쓰던 이젤과 함께 놓인다.

꽃 정물을 그릴 때 쓴 화병과 물감이 굳은 팔레트도 전시장에 나온다.

  • 특정 요일만 개방

서울 밖의 전시

서울 밖, 한국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리는, 찾아갈 만한 전시입니다.

1 / 5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새로운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오키프 전시는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변화에는 천재 한 사람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고 지지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답한다. 시카고 미술관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컬렉션을 중심으로, 20세기 초 미국 작가들이 전통과도 유럽 모더니즘과도 다른 미국의 모더니즘을 찾아간 과정을 107점으로 보여 준다. 폴 스트랜드와 에드워드 웨스턴의 사진, 아서 도브와 마스든 하틀리, 찰스 데무스, 존 마린의 그림,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

스티글리츠의 사진 〈삼등칸〉은 1907년 유럽으로 가는 배 위에서 찍었다. 스티글리츠와 그 주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알아본 것은 몇 해가 지나서였다. 마스든 하틀리는 1918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남서부에서 18개월을 지내며, 스티글리츠에게 그곳이 크고 깨끗하고 진실하다고 편지를 썼다. 오키프가 뉴멕시코에 처음 간 것은 그로부터 10년쯤 뒤인 1929년이다.

미술관은 100년 전 뉴욕에서 스티글리츠 주위에 모였던 '서클'의 작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과 이야기는 남았다고 쓴다. 그리고 오늘 작은 작업실과 전시 공간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기록될 '오늘의 미술'이라고 덧붙였다. 11월 12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리고, 2027년 4월부터는 부산현대미술관으로 간다.

〈삼등칸〉에서는 흰 다리 하나가 갑판을 위아래로 가른다. 위층에서 모자를 쓴 남자가 내려다보고, 아래층에는 머릿수건을 쓴 사람들이 모여 있다.

1 / 3 이미지: 대구미술관

로제 뒤틸뢰유는 모딜리아니와 피카소, 브라크, 미로의 그림을 가장 먼저 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뒤틸뢰유는 20세기 초 프랑스 북부의 수집가다. 1956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조카 장 마쥐렐이 컬렉션 대부분을 물려받았다. 1920년대에 첫 레제 과슈를 산 사람이 마쥐렐이었다. 1970년대 초, 마쥐렐은 컬렉션이 너무 커져 더는 개인이 가질 것이 아니라고 여겨, 고향에 미술관을 세울 생각을 했다.

1979년 마쥐렐과 아내 주느비에브는 작품 186점을 기증했고, 1983년 릴 메트로폴 현대미술관(LaM)이 문을 열었다. 이후 아르 브뤼(원생미술) 컬렉션까지 더해, LaM은 40여 년 동안 8,000점이 넘는 작품을 프랑스 관객에게 보여 왔다.

대구미술관과 LaM이 서로의 소장품으로 꾸린 교류전 《피카소에서 키키 스미스까지 - 모더니티의 초상》에서, 이 컬렉션이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모딜리아니와 피카소, 레제, 브라크, 미로부터 키키 스미스까지 약 100점이다. 11월 17일 대구에서 문을 연다.

포스터의 피카소 〈Woman with a Hat〉(1942)에서는 회갈색 여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모자는 소용돌이처럼 말려 올라갔다. 이 그림의 예전 주인이 뒤틸뢰유였다.

1 / 3 이미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인상파 전시, 그리고 세잔이 그린 강가의 집 한 채.

폴 세잔의 〈강가의 시골 저택〉(1890년경)에서 붉은 지붕의 집은 양쪽 나무숲 사이에 앉아 있고, 아래 물에는 그 집이 비친다. 집도 물도 나무도, 색면을 한 덩이씩 쌓아 올려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전시의 첫 부분 '수면 풍경과 반영'에 걸린다. 같은 부분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07)이 있다. 화면 대부분이 물에 비친 하늘과 구름인 그림이다. 전당은 인상파 화가들이 화실 밖으로 나간 것이, 자연 속에서 빛과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찰나를 담기 위해서였다고 쓴다.

세잔이 본 곳은 조금 달랐다. 전당의 소개에 따르면 세잔은 눈에 보이는 순간의 인상을 넘어 사물의 변하지 않는 구조와 형태를 탐구했고, 20세기 입체파와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 한 부분 안에서, 한 사람은 변하는 빛을 좇고 한 사람은 변하지 않는 형태를 찾는다.

작품은 모두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세잔, 그리고 피사로와 고갱 등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 11명의 원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6관과 7관에서 2027년 2월 21일까지 열린다.

여기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좋은 전시를 보셨다면 편지로 알려 주세요: hello@anthology-art.org

이 선집에 대하여: 매달 에디터 Yu가 고릅니다. 모든 전시는 기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으며(2026년 10월 29일 기준), 유료 게재는 받지 않습니다. 기간이나 관람료가 바뀐 경우 각 기관의 공지를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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