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thly
서울 선집・11월늦가을, 서울의 미술관과 오래된 집에서
Anthology 편집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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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
1956년부터 1976년까지 여성 작가들이 만든 '환경', 그리고 전시가 열린 지 며칠 만에 철거된 방 하나.

1956년, 야마자키 쓰루코는 구타이 미술전에 〈Red〉를 내놓았다. 몸을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붉은 구조물이다. 리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이 작품에서 출발한다. '환경'은 몸 전체로 걸어 들어가는 작품으로, 빛과 소리, 색, 공기가 그 재료다.
이런 작품은 대개 값싼 재료로 만들어져 전시가 끝나면 해체되었고, 팔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작품을 만든 여성 작가들의 이름도 점차 잊혔다. 197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환경/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작품을 정리했고, 그 뒤로 '설치'라는 말이 '환경'을 천천히 대신하게 되었다.
정강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1970년 8월, 정강자는 국립공보관에서 첫 개인전 《무체전》을 열고 검은 비닐 막과 연기, 빛으로 방 하나를 만들었다. 전시는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당국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다. 정확한 도면은 남아 있지 않다. 리움은 신문 기사와 작가의 메모,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방을 다시 만들었다. 방 안에 흐르는 작가의 목소리는 유족이 간직한 녹음을 바탕으로 AI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시는 Andrea Lissoni와 Marina Pugliese가 기획했다. 2023년 밀라노에서 시작해 뮌헨, 로마, 홍콩을 거쳐 왔다. 열한 명의 작가 가운데에는 주디 시카고의 〈Feather Room〉,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는 Laura Grisi의 〈Sirocco〉, 그리고 Marian Zazeela와 라 몬테 영, 최정희가 함께 만든 〈Dream House〉가 있다. 〈Dream House〉는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된다.
지식 카드설치 미술
- 예약 필수
조숙진이 주워 온 나무, 그리고 그 나무가 지나온 시간.

합판에 그린 유화 〈저 너머〉는 1987년 도쿄에서 전시된 뒤 미네무라 토시야키가 소장해 왔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작가에게 돌아왔다. 조숙진은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부터 합판, 장판, 보드지처럼 미술에 잘 쓰이지 않던 재료로 작업했다. 1983년의 자화상 〈무위자연〉이 첫 합판 작품이다.
1988년 뉴욕으로 옮긴 뒤로는 남이 버린 나무와 낡은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존재에서 비롯된다 III〉(1998~1999)에는 버려질 예정이던 와인 거치대가 쓰였다. 〈공간 사이〉는 주워 온 목재를 쌓아 3미터 가까운 높이의 사각 구조물로 만든 작품으로, 부제 '우리는 물질을 다루지만, 실제로 쓰는 것은 빈 공간이다'는 『도덕경』에서 가져왔다.
〈아래〉(2012~2015)의 나무 토템 150개는 뉴욕 플러싱의 한국 전통 사찰 건설 현장에서 나온 삼나무로 만들었고, 관람객은 기단 위에서 이를 내려다본다. 〈노바디〉(2014)는 뉴욕과 서울에서 모은 액자 틀 218개를 천장에서 늘어뜨린 설치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이다. 전시 제목은 '지나가는 자리'. 작가에게 지나감은 사라짐이 아니다. 버려진 물건도 자기가 지나온 시간을 품고 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한국 대표 조각가' 시리즈의 두 번째 전시로, 신작과 공개된 적 없는 드로잉, 아카이브를 포함해 100여 점이 나온다. 〈삶의 색채-모여라 꽃!〉(2024/2026)은 인천 굴업도 해안의 폐어구로 만들었다.
김 크리스틴 선이 곡면 스크린을 위해 그린 애니메이션, 그리고 미국 수어.

2020년 슈퍼볼 개막 전, 김 크리스틴 선은 미국 수어(ASL)로 미국 국가를 불렀다. 1980년에 태어나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다. ASL이 첫 언어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활동한다.
작품은 흔히 소리와 언어에서 출발해 악보 기호와 수어, 글자를 쓴다. 2018년의 목탄 드로잉 〈Degrees of Deaf Rage〉는 청인의 세계에서 농인이 마주치는, 화가 나는 순간들을 하나하나 각도로 표시했다. 2025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 〈All Day All Night〉가 열렸고, 2026년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로 순회했다.
신작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를 위해 만들었다. 서울박스는 높이 약 17미터의 공간으로, 55인치 LG OLED 72대를 벽에 이어 붙여 세로 8.1미터, 가로 5.4미터의 곡면 스크린을 만들었다. 작가의 드로잉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은 ASL의 손동작과 옛 만화에서 움직임을 나타내는 선(모션 라인)을 함께 놓고, 이미지는 벽과 바닥까지 이어진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바위를 상대로 끝없이 말다툼을 하는 상황, 곧 사람과 사람이 거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작업은 누가 말할 수 있는지, 무엇이 들릴 수 있는지를 계속 묻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함께하는 이 시리즈는 올해로 두 번째이며, 해마다 작가 한 명이 서울박스를 위한 신작을 만든다.
간송이 모은 서화, 그리고 오동나무 상자에 남은 글씨.
추사 김정희는 대련 〈직성수구〉를 써서 청나라의 한 관리에게 보냈다. 이 대련은 훗날 베이징의 시장에 나왔고, 최남선의 매부 박석윤이 알아보고 국내로 들여왔으며, 뒤에 전형필이 사들였다. 그 경위와 대대로 이어진 평가가 작품을 담은 상자에 적혀 있다.
이렇게 상자에 남긴 글을 상서箱書라고 한다. 작가와 제목, 감정 의견, 작품의 내력이 적힌다.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은 집안 재산의 많은 부분을 들여 문화유산을 모았고, 장인에게 작품마다 크기를 맞춰 오동나무 상자를 짜게 했다. 오동나무는 습기를 조절하고 벌레를 막아 서화 보관에 알맞다. 상자 하나 값이 쌀 몇 가마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상자에 적힌 감정은 위창 오세창을 비롯해 당대 가장 권위 있던 감식가들의 것이 많다.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의 〈고사한거〉 상자에는 금가루로 그린 산수라고 적혀 있다. 상자를 열면 검은 비단 위에 금빛 산수가 펼쳐진다.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는 동방삭이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상자에는 단원의 인물화 가운데 보기 드문 가작이라는 오세창의 평이 남아 있다.
간송 탄신 1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의 마지막 순서이며, 간송미술관 개관 이래 유물과 상서를 함께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2층에는 이징, 김홍도, 김수철의 《북산화사》, 김정희의 글씨가, 1층에는 오세창, 안중식, 장승업의 작품이 놓인다.
- 예약 필수
김창열이 30여 년을 살았던 집, 그리고 한지 위에 그린 물방울.

1969년 김창열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근교의 100제곱미터 남짓한 낡은 마구간을 작업실로 고쳤다. 밤새 작업한 어느 새벽,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내놓은 〈밤에 일어난 일〉에는 허공에 맺힌 물방울 하나만 그려져 있다. 오랫동안 첫 물방울 그림으로 여겨져 온 작품이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서울대학교 2학년이었고, 학업은 거기서 끊겼다. 중학교 동기 120명 가운데 60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그는 말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일을 꿈과 슬픔, 불안을 녹여 내는 과정이라고 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리는 〈회귀〉 연작을 시작했다. 천자문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1988년 서울 평창동에 이 집을 짓고, 그 뒤로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았다. 습한 프랑스에서는 종이 펄프가 잘 마르지 않아, 한지를 쓴 작품은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김창열은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종로구가 집을 사들여 고쳤고, 2026년 5월 '김창열 화가의 집'으로 문을 열었다. 지하 작업실은 작가가 마지막으로 쓰던 모습에 가깝게 되살렸고, 빛은 둥근 천창 하나로만 들어온다. 개관전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은 종이 작업이 중심으로, 캔버스와 한지에 그린 1998년의 〈물방울〉, 평창동 작업실에서만 만든 판화 〈눈〉(1999), 물방울과 회귀 연작의 미완성 바탕 작업도 함께 나온다.
지식 카드한지
곧 개막
데보라 터브빌의 패션 사진, 그리고 그가 가장 자주 쓴 말, '분위기'.

1975년 《보그》는 수영복 화보 한 편을 실었다. 철거를 앞둔 뉴욕의 공중목욕탕 안에 다섯 명의 여성이 있다. 사진은 큰 논란을 불렀다. 같은 해 그중 한 장이 호프스트라 대학교의 사진전에 나왔고,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는 이를 전시에서 가장 아름답게 구성된 사진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터브빌은 193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디자이너 클레어 매카델의 스튜디오에서 샘플 모델이자 조수로 일했고, 이후 《하퍼스 바자》의 패션 에디터가 되었다. 카메라를 든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상품을 앞세운 화려한 사진 대신, 인물의 내면과 그 주변에 감도는 미묘한 분위기를 찍었다. 사진을 바랜 세피아 톤으로 인화하고, 자기 사진을 오려 붙여 콜라주를 만들기도 했다. 헬무트 뉴턴, 기 부르댕과 함께 1970년대 패션 사진의 방향을 바꾼 사진가로 꼽힌다.
1981년, 당시 출판사 더블데이의 편집자였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의뢰로 베르사유궁에서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는 방들을 찍어 사진집 《Unseen Versailles》를 냈다. 이후 뉴욕과 멕시코의 산미겔데아옌데,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살았고, 2013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피크닉의 이번 전시 제목은 '분위기'. 터브빌이 자신의 사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쓴 말이다. 초기 습작부터 사진 콜라주까지, 가족의 기억과 이어진 미국 동부의 시골 풍경,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르사유, 그리고 멕시코의 집이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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