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ason

서울 겨울 전시・2026–27초겨울부터 설날까지, 서울의 미술관에서

Anthology 편집팀 ·

Anthology 편집팀이 고르고 각 기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습니다. 유료 게재는 받지 않습니다. 이 선집에 대하여

전시 중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의 스페인 회화, 엘 그레코에서 소로야까지.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한눈에보는문화정보 (공공데이터포털)

1904년, 미국 철도 재벌의 아들 아처 M. 헌팅턴은 뉴욕 맨해튼 북쪽에 히스패닉 소사이어티를 세우고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미술과 책을 모았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스페인 밖에서 스페인 미술 컬렉션이 가장 풍부한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이번에 나온 95점은 이 컬렉션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시대순으로 여섯 장에 걸쳐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집니다. 엘 그레코의 〈성가족〉(1585년경)에서 성모의 얼굴은 길게 늘어나 있고, 요셉은 흔히 보던 백발노인이 아니라 듬직한 수호자의 모습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카밀로 아스탈리 추기경의 초상〉(1650–51)에서 추기경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고, 붉은 모자가 살짝 기울어져 있습니다.

고야의 〈마누엘 라페냐의 초상〉(1799)은 높이 2미터가 넘는 전신 초상으로, 오수나 공작부인이 주문했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근위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화면은 조금씩 밝아집니다. 풍경과 야외 사생, 일상을 그린 풍속화, 그리고 마지막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 있던 20세기 초의 스페인입니다. 소로야와 술로아가가 이 부분에 있습니다.

전시 제목은 '빛과 어둠의 연대기'입니다. 2017년, 이 컬렉션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전시되어 약 48만 명이 찾았습니다.

지식 카드명암법

서도호가 천으로 꿰매어 만든, 그가 살았던 집들과 자라난 한옥.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한눈에보는문화정보 (공공데이터포털)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공부하던 서도호는 자신이 살던 방을 얇은 광목천으로 치수 그대로 재단하고 지퍼를 달아,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516호〉(1994–95) 뒤로 그는 천으로 된 집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반투명하고 가벼워서, 벽과 문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빛은 막지 못합니다.

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북동의 한옥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인 수묵화가 서세옥이 1974년에 창덕궁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떠 지은 집입니다. 1999년의 〈서울집/L.A.집〉은 이 집을 옥색 한복 천으로 꿰매어 로스앤젤레스에 놓았습니다. 〈러빙/러빙〉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집의 벽과 문, 창틀에 종이를 대고 한 곳씩 탁본해 나간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와 아버지 두 사람의 자화상으로도 읽힙니다.

〈완벽한 집〉(2024)은 그가 지금 사는 런던 집을 실물 크기로 옮긴 것으로, 자물쇠와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와 콘센트는 이전에 살았던 여섯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길이 약 21미터의 〈둥지/들〉(2024)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집의 문과 방과 복도를 이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만들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초기작과 드로잉을 포함해 약 500점을 선보입니다. 신작 〈사랑의 기억〉(2026)은 코트의 안감으로, 가족의 옷에서 떼어 낸 수십 개의 주머니가 꿰매어져 있고, 주머니마다 그 사람과 관련된 작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지식 카드설치 미술

웨인 티보의 케이크와 파이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를 보지 않는 사람들.

이미지: 현대카드 DIVE

웨인 티보(1920–2021)는 삼각형을 그리다 보니 그것이 파이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60년대 초, 그는 일상의 사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열장의 케이크, 줄지어 놓인 파이, 신발과 식료품. 형태는 원과 삼각형과 대칭이고, 물감은 두꺼워서 어떤 곳은 8밀리미터에 이르며, 그림자는 또렷합니다. 그는 이 화법을 '액추얼리즘'이라 부르며, 물감 자체도 하나의 실재하는 물건이 되게 했습니다.

그전에 그는 상업 디자인과 만화, 무대 디자인 일을 했고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부터 50년대 초까지의 그림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흙에 가까운 색을 띱니다. 60년대에 그의 케이크는 흔히 팝아트로 분류되었지만, 정작 그는 눈앞의 것을 그리는 화가로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는 사람도 그렸습니다. 〈앉아 있는 다섯 인물〉(1965)에서 사람들은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를 보지 않습니다. 전시는 이를 '외로운 함께 있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뒤로는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과 교차로,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캘리포니아의 농지가 이어집니다.

이번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는 약 75년에 걸친 작업에서 회화와 드로잉 105점을 골랐고, 웨인 티보 재단, 크로커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에서 빌려 왔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의 자화상 〈백 살 광대〉(2020)입니다. 하얀 광대 분장을 한 노인이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식 카드정물화

솔 르윗이 남긴 지시문, 그리고 그 지시에 따라 벽에 다시 그려진 벽 드로잉.

이미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솔 르윗(1928–2007)은 대학을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와서는 현대미술관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댄 플래빈, 로버트 라이먼 같은 훗날의 작가들과 알게 되었습니다. 1967년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에서 그는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고 썼습니다. 계획과 결정은 모두 미리 이루어지고, 실행은 하나의 절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벽 드로잉에 남은 것은 한 장의 지시문입니다. 〈월 드로잉 #786A〉의 지시는 이렇습니다. 검은 벽의 격자 한 칸 한 칸에, 꼭짓점과 변에서 시작해 여덟 가지 호 가운데 두 가지를 흰 크레용으로 그릴 것. 이 작품은 1995년 6월에 처음 그려졌고, 이번에는 2026년 8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벽에 다시 그려졌습니다. 그린 사람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 23명으로, 솔 르윗 재단 사람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벽 드로잉 13점은 모두 이렇게 그려졌습니다.

〈미완결의 열린 정육면체〉(1974)는 또 다른 규칙을 따릅니다. 정육면체의 열두 모서리 가운데 몇 개를 덜어 내도 성립하는 형태는 122가지이고, 그는 이를 컴퓨터 없이 하나하나 계산해 냈습니다. 90년대 이후 규칙은 차츰 느슨해져, 잉크를 여러 겹 번지게 한 색채 벽 드로잉과 불규칙한 곡선의 조각이 나왔습니다.

60년대의 흑백 구조물부터 2000년대의 색채 작업까지 45점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출발한 순회전으로, 이곳에서 그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아카이브실에는 이런 작품이 있습니다. 누군가 벽 위에서부터 선 하나를 긋고, 다음 사람은 그 선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긋습니다. 그러면 선의 모양이 조금씩 어긋나 갑니다.

지식 카드개념미술

  • 특정 요일만 개방

곧 개막

린 허쉬만 리슨이 지어낸 여성 로베르타, 그리고 60년에 걸친 기술과 '나'.

이미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973년, 린 허쉬만 리슨은 존재하지 않는 여성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로베르타는 자기 이름의 은행 계좌와 운전면허를 갖고, 신문에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고, 연락해 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작가는 로베르타를 연기할 퍼포머를 고용했고, 이 가상의 인물은 점점 작가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97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엑소시즘 의식에서 로베르타가 물, 불, 공기, 흙으로 해체되면서 프로젝트는 비로소 끝났습니다.

그보다 앞선 1968년, 그는 이미 가상의 미술평론가 세 명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후 같은 질문을 새로운 매체로 가져갔습니다. 1996년의 〈사이버로베르타〉는 원격으로 조종하는 인형으로, 눈에 달린 카메라가 찍은 영상이 20초마다 웹사이트에 올라가고, 온라인의 사람들이 인형의 머리를 돌려 어디를 볼지 정할 수 있습니다. 1984년부터 2019년까지 찍은 일곱 편의 〈전자일기〉에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어린 시절 겪은 폭력과 몸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입니다. 드로잉,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영화 등 200여 점을 여섯 장으로 나누어, 1960~70년대의 페미니즘 작업부터 감시, 알고리즘, 생명공학까지 따라갑니다. 영문 제목 'First Person Plural'은 〈전자일기〉 세 번째 편의 제목에서 가져왔고, 한글 제목의 대괄호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호에서 빌려 왔습니다.

지식 카드미디어 아트

한국전쟁 뒤 파리로 건너간 한국의 화가들.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한눈에보는문화정보 (공공데이터포털)

1925년, 이종우가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파리로 건너간 첫 한국 화가입니다. 한국전쟁 뒤에는 더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당시 파리는 현대미술의 수도로 여겨졌습니다.

이응노는 1958년 파리로 건너가, 훗날 그곳에서 동양의 서화를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습니다. 김창열은 1969년 파리에 자리 잡고 그곳에서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온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낯선 곳에서 자기만의 화법을 찾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이번에 이종우를 출발점으로,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프랑스로 건너간 50여 명의 한국 작가를 살펴봅니다. 권옥연, 남관, 문신, 방혜자, 이성자, 이우환, 한묵 등입니다. 2026년은 한불 수교 140주년입니다. 전시 제목의 '이방인'은 남의 땅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색하고,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주제를 시도한 그들을 가리킵니다.

지식 카드한국 근대 서양화

자세한 내용은 발표 예정 (2026년 1월 5일 공식 발표 기준)

이 선집에 대하여: Anthology 편집팀이 이번 시즌의 대형 전시를 고르고 시즌 동안 계속 업데이트합니다. 모든 전시는 기관 공식 홈페이지나 공식 발표에서 확인했으며(2026년 10월 19일 기준), 유료 게재는 받지 않습니다. 기간이나 관람료가 바뀐 경우 각 기관의 공지를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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